별이 달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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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한달살이

제주 한달살이에 대한 소회

진지한 꽃사슴 2021. 11. 1. 11:43

제주 한달살이를 하며 느꼈던 것들을 조금 적어보고자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7살, 4살 우리 아이들과 함께한 제주 한달살이에 대한 소회이다.

 

처음 시작은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아이들에게 좀 더 여유롭게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일상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나또한 계속되는 육아 일상에서 벗어나서 다른 풍경과 다른 사람들을 마주하고 싶었다.

 

7살 별이는 제주도의 바다와 산을 느끼고 즐길 수 있을만큼 많이 커 있었다.

바다에 들어가면 혼자서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놀랐다. 혼자서 노는 것을 잘 못하는 편인 아이인데 말이다. 별이는 아마도 물이 너무 좋은가보다. 물 속에 몸을 담그는 것이 너무 좋은가보다. 바닷물 속에 발을 담갔다가, 앉았다가, 누웠다가, 파도를 향해 걸어가고, 파도가 오면 팔짝팔짝 뛰고, 모래도 만지고 혼자서 춤도 추고.... 바닷물 속은 그녀에게 최고의 놀이터였다.

그리고 2개 오름에 올라 보았는데, 전혀 힘들지 않다고 하여 나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게다가 정말 빠른 속도로 오르내리기도 하였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많이 커있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4살 달이는 아직 자연을 즐기기에 조금 어린 나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바다에서는 얼마든지 재미있게 놀 수 있지만 별이에 비해서는 금방 추위를 느끼고 물러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오름에 오르는 것은 아직 그의 체력이 받쳐주지 못했다. 

 

또한 레이지마마라는 특수한 환경은 아이들과 한달을 보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추천할만했다. 주거공간, 주차공간, 놀이공간이 적절히 분리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좋은 점이었다. 레이지마마의 주인인 리즈님이 여러차례의 시도 끝에 만든 공간이라고 했는데, 그녀의 고민과 노력이 느껴지는 공간구조였다.

아이가 스스로 문을 열고 나가서 어른의 감시 없이도 혼자서 놀 수 있다는 것은 안타깝게도 요즈음 도시에서는 누리기 어려운 점이다. 그런 자유를 누리고 살았던 한 사람으로서 아이들에게 그것의 당연함을 알려줄 수 있어서 좋았다. 좀 더 욕심을 내자면 서울에서도 우리 아이들에게 그것이 좀 더 당연해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무 제약없이 아무 계획없이 그냥 만나서 놀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너무 소중했다.

 

나에게 이번 한달살이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제주도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였다.

우선 머물렀던 지역이 새로웠다. 이전에는 서귀포쪽 어딘가에 머물곤 했는데, 이번에는 제주시 쪽에서 머물렀기 때문이다. 구좌읍에는 당근밭이 많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그리고 당근밭의 새까만 흙, 돌과 연두빛 당근잎의 대비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월정리와 세화리 바닷가를 따라서 예쁜 카페와 팬션이 늘어서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애월읍에서는 제주를 찾는 비행기때문에 소음이 심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조천읍 구석구석 많은 것을 보고 먹고 느낄 수 있었다. 

두번째로 당연하지만 머문 시간이 훨씬 길다보니 좀 더 긴 호흡으로 제주도를 바라볼 수 있었다. 변덕스럽다는 날씨도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고, 청명하게 갠 날의 상쾌함도 느낄 수 있었다. 쓰레기를 버리는 방법이 서울과 조금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모든 초등학교 운동장에 잔디가 깔려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바다와 흙과 담, 산의 색깔을 (아이와 함께 온 것 치고는) 꽤 길게 감상할 수 있었다. 물론 아이가 없을 때만큼 자연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에 여유가 없었다는 점은 좀 아쉽기는 하였다. 앞으로 아이들이 크면서 조금씩 길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볼 수밖에...

그리고 제주도가 우리나라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곳이라서 그런지 우리가 방문했던 관광지는 모두 아주 잘 관리되어 있었다. 단 한번도 실망한 적이 없을정도였으니 말이다. 정말 대단하다.

 

덤으로 자동차운전실력이 많이 늘었다. 남편없이 지낸 시간이 길다보니 내가 운전을 해야만 하였고, 제주에서는 운전하지 않고 어딘가로 이동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운전으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져서 기분이 좋았다. 또한 날씨가 좋은 날 사려니숲길, 말 목장이 넓게 펼쳐져 있는길, 내리막에서 바다가 보이는 길 등을 운전할 때는 혼자서 "좋다."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꽤 있다. 우선 나를 위한 시간을 내는 것은 어려웠다. 아이들이 어리다보니 내가 좋은 시간은 운전하면서나 아이들과 방문한 곳에서 아이들 속도에 맞춰서 정도였다. 물론 이것도 서울에서는 누릴 수 없는 점이니 나의 많은 감각들을 정화할 수 있긴 했지만 2%, 아니 20% 부족했다. 

두번째 아쉬웠던 점이라면 무엇보다도 달이가 아팠다는 것이다. 아직은 긴 시간 함께 여행을 하기에 어려운 나이임에도 어쩌면 나의 욕심으로 아이를 그곳까지 데리고 갔던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했다. 물론 달이에게도 즐거운 시간이 있었겠지만 제주도에서까지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고, 아파서 마음대로 먹지도, 놀지도 못하고, 심지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토를 했던 기억들은 그렇게 좋게 남지 못했을 수 있다. 

그리고 아무래도 레이지마마라는 특수한 숙소에서 지내다보니 제주도 현지인들과는 교류를 거의 할 수 없었다. 긴 시간 여행을 하면 그곳 사람들의 삶을 좀 더 가까이서 볼 수도 있을텐데, 레이지마마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나와 같은 목적으로 제주도에 여행을 온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 분들과의 만남도 즐거웠지만 기회가 된다면 제주도민들의 삶 속에 좀 더 녹아서 살아보는 시간도 가져보고 싶다. 그것이 진정한 제주도 한달살이가 아닐까 싶다. 

 

내년, 아니면 내후년에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계속해서 생각이 난다면 그것도 한 번 생각해보아야겠다.

코로나로부터 벗어나서 마스크를 벗고 제주도의 자연과 사람들을 좀 더 가까이서 만나볼 수 있는 날을 기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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