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달이와 함께
솔로몬의 반지 (콘라트 로렌츠) 본문
어떤 이는 그림을 좀 더 잘 이해하고 느끼기 위해서는 3시간동안 그 그림을 바라보라고 한다.
3시간이란 시간이 길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 볼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나에게 다가온다고 한다. 바로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인 것이다. 관계맺음이 대상을 이해하는 데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하물며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그림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하는데, 동물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와 관계맺기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콘라트 로렌츠는 동물과 관계맺기의 대가였다고 생각한다.
동물의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되었던 진정으로 동물을 '아는' 학자였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동물학자이자 문인이고 책 내용과 관련된 그림까지 직접 그려넣은 일러스트레이터이기까지 하다. 사랑과 우정으로 관찰하고 연구한 내용을 담백하고 유머러스한 글로 풀어내고 그를 그림으로 묘사하기까지 하였으니 어찌 책이 재미있지 않을 수 있을까.
동물을 기른다는 것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임에도 '되새는 사지 마시오'라는 반려동물을 고르는 기준에 대해서 설명한 장에서는 나도 검은방울새와 금빛햄스터를 기르고 싶다는 생각이 샘솟았을 정도이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은 여전하지만 아직까지 용기를 낼 정도는 되지 못한다.)
가장 재미있었던 장은 '기러기 새끼 마르티나'인데 알을 깨고 나오는 회색기러기와 눈을 마주치면서 의도하지 않게 그의 엄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웃지못할 경험을 풀어놓은 이야기이다.
" 그 불쌍한 새끼가 미칠 듯한 목소리로 울면서 내 뒤를 따라 오는 것을 보면 돌이라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땅바닥에 돌돌 구르면서도 놀랍게 빠른 속도와 굳은 결의를 가지고 달려왔다. 그 결의가 의미하는 것은 명백했다. 그 흰 거위가 아니라 내가 자기 엄마라는 뜻이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렇게 생동감넘치는 육아일기를 쓰지는 못할 것 같다.
그는 새끼 기러기에게 '마르티나'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기꺼이 그의 엄마가 되어서 풀밭에서 무엇이 먹이가 될 수 있는지도 가르쳐주고 요람을 만들어주고 밤잠을 깨 가면서 재우기도하였다.
그렇게 그는 동물의 가족이 되어서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여 심지어 그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자신이 기르를 카카두가 기차역 하늘 위를 날아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 새를 '부르기로' 결심을 한 장면이 있다. 카카두는 어떤 소리를 낼까? 그가 말하기를 거의 돼지를 잡을 때 나는 소리와 유사하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이 많이 오고가는 기차역에서 가능한 카카두와 흡사한 소리를 내기 위해서 아주 크게 '왝, 왝'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주위의 사람들은 벼락에 맞은 듯 멈추어 섰고, 카카두는 흰 날개를 접고 급강하하여 그의 팔 위에 앉았다고 한다. 솔로몬은 마법의 반지를 사용하여 짐승, 새, 물고기, 벌레와 이야기 했다고 하지만 콘라트 로렌츠는 그런 반지 없이도 잘 아는 동물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동물들과 가까이에서 생활하면서 행한 연구는 동물들에 대해서 몰랐던 사실들을 알려주고 그들의 세계를 전해준다. 몇가지 예를 적어보겠다.
갈가마귀의 구애하는 수컷과 구애받는 암컷의 눈의 움직임은 사람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모습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수컷이 불타는 시선으로 드러내 놓고 암컷을 끊임없이 쳐다보는 반면, 암컷은 사방을 휘둘러보긴 해도 수컷 쪽으로는 눈길을 잘 보내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은 암컷이 수컷을 안 보는 것이 아니다. 일 초의 몇 분의 일밖에 안 되는 짧은 순간이지만 암컷은 수컷을 본다. 그것은 전체 '요술'이 암컷 자신에게 향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기에 충분한 시간이며, 암컷이 알아차렸음을 수컷이 확인할 수 있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
또한 그들이 내는 '캬'와 '큐우'라는 소리는 모두 '함께 날자'라는 뜻이지만, '캬'는 집에서 밖으로 날아가고 싶을 때 내는 소리이고, '큐우'는 집으로 돌아가자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새의 언어에 대한 해석은 처음 들었고 그만큼 정말 신선했다.
그밖에 우리는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에 대해서 부당한 윤리적 척도를 적용시키곤 하는데, 사실상 동족과의 싸움에서 육식동물은 승자가 자제력을 발휘하여 패자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입히지 않는데 반해서 초식동물에게는 그러한 자제력이 전혀 발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초식동물들은 상대방이 공격할 때 도망칠 수 있는 능력이 아주 잘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승자에게 자제력을 발휘하도록 진화하지 않은 것이다. 단지 좁은 새장 속과 같은 부자연스러운 조건하에서는 약한 놈이 도망갈 수가 없는데 이 때 비둘기와 같은 초식동물은 눈뜨고 보기 어려울만큼 잔인하고 끈질기게 승자가 패자를 공격한다.
사람사는 세계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동물들의 세계 또한 사람 세계 못지 않게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만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잘 전해줄 수 있는 매개자 사람이 귀할뿐이다. 콘라트 로렌츠는 그 귀한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나도 조금 더 동물들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면서 관찰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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