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달이와 함께
운명의 과학 (한나 크리츨로우 지음) 서평 본문
최근에 과학도서를 많이 읽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책이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이다.
그 책을 읽으면 생명체의 많은 활동 원인이 유전자에 있음을 알게 되고 모든 생명체는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기계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게 된다.
'이기적유전자'의 아이디어는 일반인으로서 받아들이기 조금은 거부감이 드는 생각들이었는데, '운명의 과학'은 이와같은 과학의 관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안내해주고 위안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남겨본다.
제2장 발달중인 뇌
p47 생후 처음 3년 동안에는 시냅스들이 인생의 어느 시기보다도 빠른 속도로 형성되어 정신의 회로판인 커넥톰의 토대를 만들어 낸다. → 커넥톰이라는 단어는 처음 접했는데, 뭔가 나의 뇌속에 있는 반도체 회로판과 같은 이미지가 그려진다. 지금 나의 아이들의 머릿속에서는 이런 멋진 회로판이 만들어지고 있었고 또한 계속해서 진행중이라는 사실에 감탄하게 된다.
p62 청소년 뇌의 생물학 때문인 부분은 얼마나 되고, 사회적 압력 때문인 부분은 얼마나 될까?
p63 청소년의 신경생물학은 전형적인 10대의 행동을 결정하는 절대적 열쇠이며, 아기의 초기 시절에 일어나는 일만큼이나 흥미진진하고 역동적이다. 발달 과정과 호르몬의 영향력이 서로 공모해서 뇌와 육체 양쪽 모두에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 충동성, 또래 압력에 대한 민감성, 극심한 자의식 등이 생겨난다. → 결국 사춘기의 정신적인 변화는 사회, 문화적인 요소보다는 신경생물학적인 요소, 즉 뇌의 발달에 기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은 신생아 시절에 뇌에서 첫번째로 큰 변화가 일어나고 몇 년 간의 점진적인 발달 이후 청소년기에 다시 한 번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웠다.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소리없이 또 눈에 보이지 않게 이렇게 큰 변화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좀 더 조심스럽게 바라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3장 배고픈 뇌
p 108~110 후성유전학, 환경이 DNA 암호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암호가 인간 몸에서 판독되고 사용되는 유전자 발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 연구. 유전자 발현 과정에서 환경적 요인이 맡는 역할은 근래에 들어서야 발견되었고, 이것을 후성유전학적 조절이라고 한다.
p 109 아무리 환경이 가혹해도 이런 환경에 의해 변화를 겪은 것은 DNA 암호가 아니다. 변화한 것은 유전자의 행동 방식이다.
p112 후성유전학은 또한 유전적 변화가 더 이상 기나긴 진화적 시간에만 달려 있는 것은 아니며, 물려받은 회로와 살고 있는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이 대단히 복잡함을 보여주고 있다.
→ 후대에 전달되는 것은 유전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는데, 유전자의 활성화 여부도 함께 전달된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단적으로는 아이들이 부모의 입맛과 식습관을 닮는다는 것이 옳은 말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내가 살고 있는 이 환경이 내가 보지 못할 몇 대 아래의 후손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웠다.
제4장 보살피는 뇌
p153 친구를 고를 때 이용하는 기준은 무엇을까? ...... 언어 사용을 통해서 활성화된다. ...... 많은 특성을 공유하는 사람일수록 가까운 친구가 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 대화를 통해 이 모든 것에 대한 스캔이 이루어진다. .... 이 모든 것이 무의식 수준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잊지 말자.
→ 최근에 동네에서 만나 친해진 친구들이 있다. 여러모로 마음이 맞아서 종종 만나게 되는데, 이 친구들을 알아가면서 놀라운 것은 우리들 사이에 공통점이 아주 많다는 점이다. 알고 보니 같은 동네에서 자랐고, 같은 학교를 다녔고, 결혼식 장소가 비슷했던 것은 대화를 통해서 무의식적으로 스캔 후 만났기 때문에 나타난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재미있었다.
제6장 믿는 뇌
p212 강력한 정치적 확신을 갖고 있는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뇌 스캔 영상을 분석해보니 보수주의자들이 일반적으로 진보주의자보다 더 예민한 편도체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p213 평생에 걸쳐 복잡하게 얽힌 망처럼 신념이 형성되다가 어느 날 스스로에게 진보주의자나 보수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이게 되는 것이다.
p218 자신의 신념 체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정보가 등장하면 큰 반발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자신의 핵심 자아에 대한 위협이기 때문에 진보주의와 보수주의 어느 쪽 뇌 유형에 해당되든 상관없이 뇌의 자기보호 시스템이 가동됩니다.
→ 정치적 성향 등의 신념은 성인이 되면서 고착되고 잘 변하지 않는 부분 중 하나이다. 왜 잘 변하지 않을까. 정치적 성향을 가지게 되는 나이까지 그 사람의 뇌가 변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신념을 바꾼다는 것은 곧 뇌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일테니 말이다.
p224 인간은 과연 생물학적 운명의 노예인가, 아니면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적 존재인가? 인간은 정말로 선택의 자유를 갖고 있는 것을까? 아니면 인간이 매일 내리는 결정들이 모두 사실은 미리 정해진 계산을 통해 나온 결과인가? 자유의지는 환상에 불과한가?
→ '이기적 유전자'에서 받았던 의문점과 만나는 지점이다. 우리는 유전자를 운반하는 기계에 불과한가. 모든 결정과 행동과 생각은 유전자에 의해서 조종되는 것인가. 과학은 계속해서 이에 대해서 Yes라는 답을 내놓고 있는 듯 하다. 그렇지만 유전자와 뇌가 모든 것을 세세하게 결정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운명의 범위가 어느정도 정해져 있고 자유의지로 그 중 일정부분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선택의 순간들이 개개인 인생의 색깔을 좀 더 선명하게 만들지 않을까.
제7장 예측 가능한 뇌
p255 흥미롭게도 현재 유전적 요인에 대해 앎으로써 얻는 가장 큰 이득은 심리적 이득으로 보인다. 케이트가 말하길 자기가 치료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지금까지 큰 골칫거리였던 자신의 행동들이 유전적 변화 때문에 야기되는 것임을 알고 나면 큰 안도감을 느낀다고 했다.
→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고 그 개인의 유전자에게 책임을 돌림으로써 그 사람은 심리적 안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조금은 역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어디까지가 나인가.
'읽을거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김재명 지음) (4) | 2022.10.14 |
---|---|
PACHINKO (by MIN JIN LEE) (0) | 2021.07.02 |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지음) (1) | 2020.06.24 |
질문이 있는 식탁, 유대인 교육의 비밀 (0) | 2019.05.31 |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A. 로빈슨 지음) (2) | 2016.05.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