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유치원에 보내지 않는 이유
우리 아이는 집 앞의 일반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로부터 가끔씩 "아이가 말을 잘 하니 영어유치원에서도 적응을 잘 할거에요.", "강남에서 영어유치원에 안 보내시다니 신념이 대단하신가봐요." 등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런 이야기는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것이 더 일반적이고 일반유치원에 다니는 것은 특수한 경우인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또한 내가 가입되어 있는 강남 엄마들의 맘카페에서는 영어유치원 관련 글이 많이 올라오는데 이 글들을 읽어보면 가히 영어유치원 전성시대임을 실감할 수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주변 지인 중에 약 20여년 전, 영어유치원이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이들을 그 곳에 보냈었다는 분이 있다. 즉, 20여년 전에 영어유치원이라는 기관이 처음으로 생기기 시작한 것인데, 그 때부터 영어교육 방법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커지면서 공교육의 사각지대인 유치원에 영어가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외국어는 유아기에 접하기 시작하면 효과가 좋다는 일부 연구결과에 대한 믿음으로 영어유치원에 대한 인기는 급상승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점점 치열해지는 경쟁으로 인해서 사교육 시장의 주요고객 연령은 점점 낮아졌고, 심지어 영어 사교육 시장은 모국어인 우리나라 말을 막 떼기 시작하는 만2세까지 내려왔다. 영어유치원은 유아기 영어사교육 시장의 꽃이라고 해도 될만하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을 2019년 현재의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싶지 않다. 영어유치원 태동기인 약 20여년 전에는 그 취지가 지금보다 조금 더 순수했을 수 있다. 그렇지만 현재의 영어유치원은 경쟁사회의 생리가 그대로 녹아있는 곳이기 때문에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방법을 배우는 곳으로 전락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유아기 연령에 맞는 교육보다는 영어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말하고, 읽고, 쓸 수 있는 방법을 익히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살펴보면, 첫번째로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5,6,7세때부터 숙제를 한다. 사람의 인생에서 '해야 할 일'이 없는 자유로운 시기가 언제 있을 수 있을까. 아무런 구속과 책임이 없다는 것은 유아기에 누릴 수 있는 특권과 같은 가치이다. 그런데 영어유치원에 다니게 되면 그 특권을 빼앗기고 만다. 숙제를 하는 시간이 아무리 짧다고 할지라도 유아기는 자발적으로 그것을 해낼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앞으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해야할 숙제, 공부도 너무 많은데 그럴 필요가 없는 시기부터 일부러 짐을 지게 하는 것은 부모로서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두번째로 영어유치원은 공인된 교육기관이 아닌 학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유치원은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선생님을 고용할 필요가 없고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선생님도 영어유치원에서의 경력은 유치원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최근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영어유치원에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선생님을 찾기 어렵다는 사실을 고발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글이 익명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하는 이도 있겠지만 글의 논리가 상식적으로 맞기 때문에 나는 그 고발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선생님이 없다는 것은 영어유치원이 영어를 제외한 유아기 교육에 대해서는 전문성이 떨어지는 기관이라는 뜻이다. 과연 영어가 더 중요한 것일까 유아기에 적합한 교육이 더 중요한 것일까.
세번째로 영어는 언제 시작하느냐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어 회화를 잘 못하던 사람도 그 동기가 확실하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얼마든지 그 수준을 높힐 수 있다. 물론 남들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한계가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시작한 시기보다는 영어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하고 동기를 찾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이가 영어공부를 일찍 시작하지 않아서 경쟁에서 뒤쳐지는 것에 대해 부모가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이해한다. 모든 사교육은 부모의 불안함을 이용하는 것이니. 하지만 그럴수록 아이에 대해서 믿음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는 인내를 가질 필요 또한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교육에 대한 정답은 없다고 한다. 부모의 철학이 모두 정답이라고 한다. 나는 위와 같은 이유로 인해서 영어유치원에 보내지 않기로 선택하였고 이를 뒤집을 수 있는 다른 이유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이 교육의 긴 여정 속에서 수많은 선택과 집중이 있을 것인데 때마다 부모로서 최선의 길을 찾고자 노력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