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과 같았던 마지막 토요일
제주에서 돌아와서 일상의 일주일을 보냈다.
어느정도 여독도 풀렸고, 남편이 아이들과 홍천에 가서 모처럼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미처 다 하지 못했던 제주 한달살이 이야기를 풀어가고 싶다.
마지막 금요일 오후에 남편이 제주에 다시 왔다.
금요일 오후에 오기 위해서 일주일간의 바쁜 일정을 모두 소화해낸 남편에게 감사했다.
남편이 온 금요일도 바람이 아주 세차게 불고 있었다.
바람이 너무 세서 밖에서 무엇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 바람을 피하며 보냈다.
그리고 밝아온 토요일 아침.
토요일 아침은 정말 우리에게 찾아온 선물과 같이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몇 일간 계속되었던 바람은 잠잠해졌고, 따뜻한 햇살과 깨끗한 공기가 남아있었다.
이 날 아침에는 지난 주말에 우천으로 취소되었던 한라생태숲 유아숲체험이 예정되어 있었다. 레이지마마에서 묶고 있는 다른 아이 엄마를 통해서 알게 된 체험인데, 레이지마마에서만 무려 5개 집에서 참가가 예정되어 있었다. 대상 나이가 5~7세이고, 달이는 아직 감기기운이 있는 관계로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남편이 별이와 함께 친구집 차를 얻어타고 먼저 출발하였다. 나와 달이는 아침을 좀 더 먹고, 짐을 챙겨서 약 1시간쯤 후에 출발하여 한라생태숲에 도착하였다. 앞서 글에서도 말한 적이 있지만 제주도는 어디를 가나 감탄을 하게 된다. 한라생태숲 역시 한라산 중간산에 아이들이 안심하고 놀 수 있도록 숲이 정말 잘 조성되어 있고,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러나 남편을 통해서 나중에 알게된 바로는 숲체험 프로그램은 그 좋은 숲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활동에만 집중되어 있어서 아쉬움이 있었다고 한다. 조를 나누는 과정에서 별이가 친한친구들과 함께 하지 못하게 되어서 내가 도착하였을 때 별이는 그리 신나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 날은 특별히 오후에도 예정된 일정이 있었다.
바로 레이지마마에서 묶고 있는 몇몇 집이 함께 백약이오름에 오르기로 한것이다.
몇차례 레이지마마에 왔던 경험이 있는 엄마로부터 날씨 좋을 때 아이들과 함께 오르기 좋은 오름으로 백약이오름을 추천받았기 때문이다. 때마침 이 날은 오름에 오르기 거의 최고의 날씨였다.
별이는 좋아하는 언니, 친구, 동생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신이났다.
그래서 초반부터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앞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와 남편과 달이는 달이의 페이스에 맞춰서 천천히 올라갔다.
남편이 반쯤 목말을 태워서 올라갔고, 또 반쯤은 내가 안아서 올라갔다.
힘이 들었지만 날씨와 풍경이 모든 피로를 씻어주었다.
정상에 오르면 아래로 보이는 풍경이 그저 아름답다.
달이도 '풍경이 예쁘다.'며 감탄을 할 정도였다.
다른 오름들이 볼록볼록 보이고, 성산일출봉과 우도도 보였다.
별이는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하여 에너지가 넘쳤고, 그저 신이 났다.
서울로 돌아온 이후에도 별이는 백약이오름에서의 시간이 가장 좋았다고 하였다. 그만큼 탁트이고 거리낄 것이 없는 곳에서 좋은 친구들과의 시간이 즐거웠던 것 같다.
백약이오름은 정상에 오르고 나면 분화구 주변을 한바퀴 돌 수 있는데, 나와 달이는 정상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이 별이와 남편 그리고 다른 일행이 함께 분화구 주변을 돌았다.
혹자는 산에는 왜 오르느냐, 올라가면 내려갈 것을... 이라고 농담삼아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산에 오르는 시간과 내려오는 시간이 달라서 햇빛이 다르고 보이는 풍경도 다르다고 생각한다.
백약이오름에서의 멋진 풍경을 감상하고 아이들은 거의 뛰어서, 그리고 나와 달이는 천천히 걸어서 내려왔다.
달이는 백약이오름에서 내려오면서 힘이 많이 빠졌는데, 아니나다를까 카페로 향하는 차 안에서 깊이 잠이 들었다.
일행은 한 카페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다시 레이지마마로 돌아왔다.
우리의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마지막 토요일이 선물과 같이 아름답고 즐거워서 감사한 밤이었다.
그래서 더욱 여운이 남고 아쉬움이 남고 먹먹함이 남았다.
달이와 함께 한라산 백록담을 바라보았다.
별이는 레이지마마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친구들과 이야기도 하고, 까르르 깔깔 웃기도 하고 뛰어다니고 킥보드타고, 숨기도 하고..
그리고 왜 이렇게 한달이 빨리 갔냐고 말하며 잠이들었다.
나는 짐을 싸느라 1시가 넘어서 침대에 누웠다.
짐을 싸느라 신경이 곤두서서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자 제주도에서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먼저 바닷가를 찾았던 날들이 기억이 났다.
미소가 지어졌다.
분명 힘들었던 시간도 많이 있었는데, 그보다는 좋았던 기억들이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어쩌면 더욱 진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기도 하다.
나에게는 정말 선명하게 남을 기억인데,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도 궁금했다.
대부분의 시간이 아이들에게 맞춰져 있었지만 나의 의지로 움직이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내가 주인공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오래간만에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마지막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