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김재명 지음)
유시민 작가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 개정판을 읽었다. 다른 챕터들은 한번쯤 들어본 적이 있는 이야기였으나 유독 팔레스타인에 대한 부분은 그 심각한 수식어의 무게감에 비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낯선 내용이었다. 그런 사실이 부끄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여 거꾸로 읽는 세계사 속의 추천도서인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을 읽기 시작하였다.
중동은 주변에서 그닥 알려주지도 않고, 나 또한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그야말로 관심밖의 지역이었다.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여자들도 군복무를 해야하는 나라, 벤처투자에 대한 정부 지원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나라(예전 직장에서 알게 된 사실이다.), 유대인의 나라라는 점 정도 알고 있었다.
이런 무식한 나에게 이 책은 아주 친절하고 자세하게 이스라엘의 건국과정과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관계, 두 나라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 등을 조목조목 알려주고 있다. 저자 자신이 논조는 중립적이지 못하다고 밝혔듯이 이스라엘보다는 고통받고 있는 팔레스타인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내용이 많다. 나 또한 이 책을 통해서 비합리적이고 비인간적인 이스라엘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었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투쟁을 이해할 수도 있었다.
우선 이스라엘의 민족 구성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고 싶다.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건국한 가장 큰 명분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즉, 로마의 박해를 피해서 떠났던 조상들의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의 후손인 유대인을 세파라딤 유대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유대인의 70%를 차지하는 민족은 세파라딤이 아니고 아쉬케나짐 유대인이다. 아쉬케나짐 유대인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들은 아브라함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터키계(돌궐족) 카자르인의 후손이라고 한다. 8세기 카자르 왕국의 불란왕은 정치적, 외교적인 이유로 인해서 유대교를 국교로 받아들였고 국민들을 유대교로 집단 개종시켰다. 이후 슬라브족과 몽골족의 침략으로 이들은 지금의 독일과 폴란드 등 동유럽 쪽으로 흩어졌고 나치로부터 희생을 당하게 된다. 현대 유대인 인구의 과반을 차지하는 이들이 카자르 출신이라고 한다면 성경에서 '약속의 땅'이라고 언급한 팔레스타인인들이 살고 있던 곳을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아주 약해진다. 그야말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사실이다.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정보를 이용해서 세계를 어지럽히고 있는 혹세무민의 전형이라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의 건국 역사를 살펴보면 서구 제국주의의 역사와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된다.
가장 중요한 장면은 1917년 11월 영국 외무부 장관 아서 제임스 벨푸어가 로스차일드에게 보낸 편지에 있었던 '벨푸어 선언'이다. 편지에는 "영국 정부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을 건설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영국은 유대인으로부터 전쟁자금 지원이 필요했고 또한 팔레스타인 땅이 수에즈운하와 중동의 원유매장국가들과 가깝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전략적으로 유대인과 손을 잡았다. 즉, 유대인의 시오니즘(팔레스타인에 유대국가를 세우자는 움직임)과 영국 제국주의의 무서운 결탁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팔레스타인을 보호령으로 다스리던 영국의 묵인 아래 유럽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이주가 늘어났다.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구가 점차 늘어나자 1930년대부터 아랍인들과 유대인들간의 마찰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유대인들은 독립국가 건설에 나섰다. 1947년 유엔은 "팔레스타인을 아랍 국가(44%)와 유대 국가(56%)로 나눠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놓은 후 팔레스타인을 분할하되 양쪽이 차지하고 싶어하는 예루살렘은 유엔의 신탁통치 아래 양쪽에 모두 개방된 국제도시로 둔다고 하였다. 하지만 영국군으로부터 훈련받은 이스라엘의 무장조직은 이미 팔레스타인 땅의 3/4을 점령한 상태였고 유대인들은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한다.
20세기에 국민국가의 경계가 그려지던 폭풍우와 같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가장 야만적으로 국민국가의 깃발을 꽂은 나라 중 하나가 이스라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땅에 살던 아랍인들의 피와 눈물 위에 세워진 국가이기 때문이다.
제1차부터 제4차에 이르는 중동전쟁, 팔레스타인의 인티파타(봉기)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이 반복되면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종말살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장면이다. 바로 일제가 우리나라를 점령하고 있을 당시에 한민족에게 저질렀던 것과 동일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35년만에 해방되었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70년이 넘도록 그 억압 속에서 살고 있다.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이스라엘 정부가 자행하고 있는 인종말살정책이 나치의 유대인 학살 정책과 너무나도 닮았다는 것이다. 과거의 피해자에서 현재의 가해자로 180도 입장을 바꾸고도 일말의 부끄러움과 반성이 없는 뻔뻔함에 같은 인간으로서 좌절감을 느낄 정도이다.
이스라엘의 정책 중에서 나치를 가장 연상시키는 부분으로 분리장벽을 꼽을 수 있다. 팔레스타인 땅으로 인정하고 있는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그리고 동예루살렘은 8m 높이의 콘크리트 장벽 또는 이중삼중의 철조망으로 둘러쌓여 있다. 21세기 중동판 게토가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이동의 자유를 막고 기존에 그들이 살던 땅을 갈라놓으며 심지어 교육 및 의료권마저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이스라엘에 대한 이미지를 가장 심하게 깨뜨렸던 장면이 바로 이 분리장벽이었다.
다음으로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유대인정착민 정책이다.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동예루살렘 주변으로 또는 그 안으로 점차 유대인들의 정착촌이 파고들고 있다. 이스라엘정부는 그 지역 정착민들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유대인정착촌을 늘려가고 있다. 이것은 일제시대에 일본 정부가 의도적으로 우리나라 땅에 일본인 마을을 지었던 것과 같은 현상으로 보면 된다. 일본인과 우리나라 사람들 간에 있었던 차별, 폭력, 억압이 이스라엘 정착민과 팔레스타인 사람들 간에 똑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유대인정착민들은 이스라엘 국방부에 의해서 무장이 허용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향해서 총을 쏠 수 있다. 심지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할 수 있으며 영장 없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체포할 수 있는 권한도 있다. 비록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자원과 노동력을 약탈하고 있진 않지만 팔레스타인인 인종말살을 위해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식민지화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예루살렘은 성경에 등장하는 도시로 천주교와 기독교의 성지도 여럿 있는 매우 성스러운 곳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예루살렘이 천주교에만 성스로운 곳은 아니었다. 이곳은 유대교의 성지이기도 하고, 이슬람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종교로 인해서 폭력과 복수가 반복되었던 매우 첨예한 도시인 것이다. 때문에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에서도 팔레스타인에서도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도시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스라엘 헌법에는 이스라엘의 수도가 예루살렘이라고 되어 있는데, 국제법은 예루살렘을 누구의 땅도 아니며 이스라엘의 수도는 텔아비브이라고 하였다. 예루살렘은 분쟁의 씨앗을 항상 품고 있는 도시였던 것이다. 이곳을 찾는 다양한 종교의 신자들의 기도는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신은 과연 이들의 기도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미국은 대표적인 친이스라엘 국가이다.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에서 버틸 수 있는 것은 그 뒤에 미국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우선주의의 일반적인 외교정책에서 벗어난 것으로 풀이될 정도로 친이스라엘 정책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1973년부터 2003년까지 미국 대외 원조액의 1/5을 이스라엘에 보냈다는 점 등을 지적하면서 "그 원조가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것이었기 보다는 이스라엘의 국익을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해당 학자들은 이것이 이스라엘 로비의 압력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어떻게 세계 최고의 초강대국 미국의 외교정책이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방향으로 결정될 수 있을까? 유대인 단체의 힘은 대체 무엇인지... 결국 돈인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또한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테러'로 낙인 찍는 미국의 언론을 무비판적으로 나르는 우리나라 언론을 통해서 세계의 소식을 들었기 때문인지.. 나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하마스'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들이었는지 반성을 하게 된다.
이 책을 통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알게 되어 뿌듯하게 생각하고 저자분께 감사하다. 그런데 그렇다면 과연 나와 같은 대한민국 국민은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국민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도무지 문제가 풀릴 실마리가 잘 보이지 않는 커다란 국제문제 앞에서 나는 너무나 작고 아무 힘이 없는 존재로 느껴진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유대인정착촌에서 만든 물건을 사지 않는 불매운동에 참여하는 것 정도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개인의 인식이 모여서 집단의 인식이 된다면 아마도 그 힘이 좀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주변에 소개하고 싶고 더 나아가서 우리 아이들이 컸을 때 내가 알게 된 그 역사를 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