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없는 제주살이 시작 - 브릭캠퍼스, 전이수갤러리, 꿈바당어린이도서관, 함덕해수욕장
월요일 밤, 남편이 서울로 올라가고 아이들과 나만 제주도에 남았다.
서울에서도 아이들이 어린이집, 유치원에 가지 않고 집에만 있어야 하면 힘들어 하곤 했는데, 과연 잘 지낼 수 있을까. 나 자신도 나에 대해서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그래도 지난 일주일여간 제목에 열거한 곳들을 돌아보고 다녔으니, 내 자신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방문했던 모든 곳이 다 좋았고, 그래서 이 곳에 추억으로 남기고 싶다.
화요일
화요일에는 그간 밤에 잠을 잘 못자기도 하고, 이 곳에서의 생활이 아직 익숙하지도 않아서, 동네 마트만 잠시 다녀오고, 내내 숙소에서 지냈다.
수요일
그리고 수요일, 드디어 아이들과 첫 외출을 해보았다. 목적지는 브릭캠퍼스. 이 곳을 첫번째 목적지로 정한 이유는 날씨 탓이 컸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인지 올 9월말 제주도에서는 예상외로 너무 더운 날들이 많았다. 9월말에도 해수욕을 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으니 할 말 다했다. 일기예보를 보니 수요일도 낮 최고기온이 28도의 너무 더운 날이 예상되어서 야외보다는 실내에서 놀 수 있는 곳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와 가기 좋은 실내 관광지 중에서 그래도 숙소에서 가까운 곳이 바로 브릭캠퍼스였던 것이다. 브릭 캠퍼스는 쉽게 말해서 레고박물관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입구 앞 정원에서부터 아기자기한 레고 작품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그리고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은 그 정교한 디테일과 표현력에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아이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 앞에서 한참 구경하고,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다음 것을 보려고 계속 돌아다녔다.
별이가 좋아했던 작품은 해변의 풍경, 벚꽃길, 옛날 가옥 등이었는데, 미처 사진을 찍지 못했다. 아직 어린 두 아이들과 다니면서 사진까지 찍기는 좀 어려운 것 같다.
목요일
목요일에는 비가 오락가락 했다. 제주도에 온 이후 첫 비오는 날이었다. 그간 너무 덥더니 비가오려고 그랬다보다. 비가오는 촉촉한 아침공기가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별이가 아랫층에서 소리를 지른다. "엄마~ 우리 망했어~~~." "왜?" "앞에 창문 안 닫아놔서 집에 물이 찼어."
아뿔싸, 전날 밤에 너무 더워서 창문을 열어놨었는데, 그걸 닫지 않고 잤던 거다. 아침부터 부랴부랴 수습하고 아이들 밥먹이고 하다보니 벌써 지치는 듯 했다. 그래도 내가 가보고 싶은 갤러리에 예약을 해놓았으니 정신을 잘 붙들어매고 아침부터 아이들과 출발했다.
전이수갤러리는 제주도에 살고 있는 어린 아이가 그린 그림을 전시한 곳 정도로 알고 찾아갔다. 마침 레이지마마에서 아주 가까운 함덕해수욕장 앞에 있었다.
이수라는 아이는 제주도에 살고 있는 14살 남자아이였다. 갤러리에서 보여주는 영상에서는 머리가 길어서 여자아이인 줄 알았는데, 집에 와서 좀 더 찾아보니 남자아이였고, 소아암환자들에게 머리를 기부하고자 기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수는 천재였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의 깊이가 남달라서 더욱 특별한 아이였다. 마음의 깊이는 이수의 일기와 인터뷰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재미없다고 몸을 비비꼬고, 빨리 가고 싶다, 배가 고프다 보채어서 찬찬히 둘러보지 못했지만 짧은 시간동안에도 너무 감동적이었고,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혼자 한 번 더 찾아와서 이수의 세계를 곱씹어보고 싶다.
이수가 엄마에 대해서 쓴 글과 인터뷰를 보아서인지 그 날 저녁 우리 별이도 '엄마 고맙습니다.'와 같은 내용의 편지를 써 주었다. 작게라도 아이에게 좋은 자극을 주었던 것 같다.
점심은 바로 근처 딱새우전문이탈리안 레스토랑인 '끄레베레'에서 먹었는데, 나도 우리 아이들도 너무 맛있게 먹었다. 모든 메뉴에 '딱새우'가 들어가는데, 까 먹는 재미도 있고 맛도 있었다.
집(이젠 집이란 표현이 조금 더 익숙해진다.)에 돌아와보니 좀 썰렁한 느낌이다. 집에 가도 할 것도 없고 친구도 없으니 다른 곳에 한군데 더 가보기로 했다. 그래서 네비게이션에 찍은 목적지는 꿈바당어린이도서관. 그 전날 찾아갔던 브릭캠퍼스와 마찬가지로 차로 편도 40여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좀 멀지만 그래도 더 좋은 대안이 생각나지 않기에 출발! 꿈바당어린이도서관은 대통령공관이었던 곳을 어린이도서관으로 개조한 곳이었다. 그래서 도서관 내부도 남다르고 마당도 아주 넓고 좋았다. 대통령이 쓰던 행정실과 침실 가구도 보존해놓아서 볼거리도 있었다. 오래간만에 아이들에게 원없이 책을 읽어주었다. 비록 몸은 조금 힘들지만 아이들이 재미있게 듣고 있으면 책을 읽어주는 것이 너무 좋다. 별이도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보는 것에 예전보다 좀 더 흥미를 가지는 것 같았다. 비가 내려서 마당에서 놀지는 못했지만 다음에 또 오게된다면 마당에서도 좀 뛰어놀게 해보아야겠다. (꿈바당어린이도서관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했다. 다음에 꼭 다시 가봐야겠다.)
집에 돌아와보니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별이의 킥보드가 사라진 것이다. 안그래도 한시도 쉬지 못하고 돌아다녀서 녹초가 되었는데, 별이가 폭발하여 나도 식탁에 쓰러지고 말았다. 별이는 레이지마마에 남아있던 주인없는 킥보드 중 하나를 찜하여 타고 있었는데, 그날 낮에 킥보드 주인이 나타났던 것이다. 별이로서는 너무 정들었던 킥보드가 없어져서 울고불고 소리지르고.... 별이의 폭발은 때로는 정말 받아주기도 바라보기도 어려울 때가 있다. 남아있는 다른 킥보드는 타지 않겠다고 한다. 이제는 밖에서 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금요일
그 전날 너무 많이 돌아다녔더니 지쳐서 쉬었다 가기로 했다. 별이는 진짜 밖에 안 나갔다. 맘 먹고 집에서 놀아서인지 두 아이가 무려 3시간을 싸우지 않고 재미나게 잘 놀았다. 이런 귀중한 시간이라니...
그리고 레이지마마 라운지에 아이들과 쥬스를 마시러 갔다. 라운지에는 캐리이모 이외에 아무도 없었다. 아이들이 넓고 잘 꾸며진 라운지가 마음에 들었나보다. 푹신한 방석을 하나씩 내려놓고 앉아서 쥬스를 마셨다. 캐리이모와 이야기도 조금 나눠보았다. 그 공간이 조금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아이들도 너무 좋아했다.
음식물 쓰레기가 쌓여서 버리러 가야한다고 하니(이곳에서는 쓰레기를 외부에 가져가서 버려야 한다. 내가 찾아가는 곳은 함덕해수욕장 주차장에 있다.), 별이가 바다에 가고 싶다고 한다. 왠일이냐...
그래서 계획에 없이 함덕해수욕장을 찾았다.
그 전 날에 갔었을 때에는 싫다며 징징대던 별이가 이 날은 온 몸을 바다에 맡기면서 놀았다. 아이는 아이인가보다.
밤에는 별이가 다른 킥보드를 타보려고 하다가 다른 사건이 또 발생했다. 뭔가 별이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이다. 그래서 계속 밖에는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었다. 달이는 이제 이곳에서 저녁시간에 형, 누나들과 킥보드 타며 노는 것에 거의 적응한 것 같다. 신나게 놀고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