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력 육아맘
오래간만에 예전 직장동료들과 점심을 함께 먹었다. 물론 나는 달이와 함께 했다.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아저씨들만 가득한 고기집에서 달이와 점심을 먹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회사원 냄새(회사원들에게 진짜 냄새가 난다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 특유의 약간은 어색한 표정과 자세가 있다.)를 맡은 것이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그런데 별이를 키우면서 회사를 다니지 않던 때에는 내가 있던 그 자리가 많이 그리웠는데, 지금 나는 그 자리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함께 점심을 먹던 예전 직장동료 언니도 가위를 들고 시금치를 자르고 있는 나를 약간은 어색한 듯 바라보았다.
별이를 이모님께 맡기고 1년반동안 회사를 다녔다. 저녁에 회사를 마치고 나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별이 생각에 발을 동동거리며 집으로 급히 뛰어오곤 했다. 과연 나는 잘 하고 있는 것인가. 많은 생각을 했다. 회사를 다니는 것은 내 인생 30년의 결과였다. 좋은 대학과 좋은 학과, 자격증과 그간의 경력, 그리고 그 모든 시간 속에서 만나고 함께해 온 사람들. 이 모든 것이 내가 회사생활을 이어나가야만 유지되고 의미있을 수 있었다. 30년이 넘는 시간 중에 단 한 순간도 육아를 준비한 시간은 없었다. 나만 많은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10년만 버티면 별이가 직장을 다니고 있는 엄마를 더욱 자랑스러워하고 좋아할 거야. 학교 가면 엄마가 집에 있는 거 별로 안 좋아해." 그 말이 맞는 것도 같았다. 그렇게 버텨서 아이를 키운 선배들을 보면 정말 대단해 보였다.
그런데 별이는 나를 원하고 있었다. 아침에 내가 회사 갈 준비를 하는 순간부터 가지 말라고 울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마음이 약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이렇게 원하는 아이를 두고 10년 뒤를 위해서 일하러 나가는 것은 앞, 뒤가 맞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Carpe Diem' 즉, '지금 이 순간을 잡아라.'라는 말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기도 하는데, 10년 뒤를 위해서 지금을 희생해야 하다니... 점점 이것은 나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커졌다. 지금 나를 가장 원하는 사람은 회사 사장님이 아니라 바로 별이였다. 또한 무엇보다도 별이와 함께 할 때 내가 진정으로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퇴사를 했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직장 경력이 많은 고학력 엄마가 사회생활을 지속하는 것을 더욱 권장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공부한 것이 아깝고 회사에서 쌓은 경력이 아깝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퇴사를 하고 향후 10년동안 아니 그 이상 회사를 다닐 생각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렇지만 퇴사한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까지 그 선택을 후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지금 이 순간 나를 가장 원하는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사회생활을 위한 나의 과거 30년의 인생보다 훨씬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오래간만에 멋진 빌딩 지하 아케이드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아이들과 함께 간식을 먹었다. 어느새 헝클어진 머리와 늘어진 티셔츠, 거칠거칠한 손의 내모습은 아이들과 함께 앉은 식탁 앞에서 더욱 어울렸다. 그리고 멋진 옷과 구두를 입고 명함을 내밀던 그 때 나의 모습보다도 나는 나를 더욱 사랑하고 있기도 하다.